무주의 맹시-슬.픔.을.간.직.한.사.람.들.에.게
Inattentional Blindness - To those who cherished s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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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의 맹시 Inattentional Blindness
눈이 특정 위치를 향하고 있지만 주의가 다른 곳에 있어서 눈이 향하는 위치의 대상이 지각되지 못하는 현상이나 상태.
A phenomenon or condition in which the eye is pointing at a specific location, but attention is different, so that the object at the location where the eye is facing cannot be perceived.
”
artist statement
인간은 왜 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주지하는 것은 인간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잘 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존재이며 거주할 ‘곳’, 일할 ‘업’을 살펴보고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이러한 인간의 존재 방식을 단순히 ‘있다’, ‘생존한다’라는 의미와 구별하기 위해 ‘실존’이라 명명하고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공간을 물체가 놓인 공간, 동물이 생존하는 환경과 구분하며 사람이 사는 의미와의 연관성 속에서 열림을 강조하였다. 이를테면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는 무의미한 공간이 아닌 구석구석마다 의미가 배어 있는 특별한 풍경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애석하게도 풍경을 잃을 처지에 놓인 무수한 사람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목격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죽음과 맹렬하게 맞싸운다. 넘쳐나는 정보량 때문일까? 우리의 눈은 이와 같은 이슈들 속에 머물기도 하지만 이내 ‘주의’는 멀어지고 스쳐 지나친다.
2019년 11월 환경부는 익산 장점마을 집단 암 발생 문제와 관련하여, 2001년부터 2017년까지 불법으로 가동된 금강농산(비료공장)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였다. 이것은 정부가 환경오염 피해로 인한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적 관련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같은 시기, 환경부는 쇳가루 마을로 불리는 인천 사월마을의 ‘주민건강실태조사’를 공개하며 주거 부적합 결정을 내렸다. 이 또한 전국 최초 사례이다. 현재(2020년 말 기준) 장점마을은 주민 80명 중 17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22명이 투병 중이며 사월마을의 경우,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주민 122명 중 15명이 암 판정을 받았고 그중 8명이 사망하였다. 이 두 지역은 금강농산이라는 기업,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며 빼곡히 들어선 폐기물/재활용 관련 업체들에 의해 환경이 파괴되고 오랫동안 ‘터’로 알고 살아온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참담한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공장 허가를 내준,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행정기관이 존재하고, 내부를 파헤쳐보면 자본가들의 악덕 행위가 판을 친다. 불공정과 불평등, 집단/지역 이기주의, 계급화된 장소 또한 민낯을 드러낸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2001년 금강농산이 들어선 이후 투쟁의 연속인 동안, 사월마을 주민들이 1992년 2월, 세계 최대규모의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가 조성된 이래로 현재까지 고통을 호소하는 동안 그것의 실체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불행히도 이것은 그들이 겪은 각종 질병의 경험, 고통, 소외로 기록될 수 밖에 없는 현대사임은 자명하다. 바야흐로 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든 시점에서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을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하고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운동-트랜스 휴머니즘(transhumanism)이 전개되며 한쪽에선 불로장생의 인간(트랜스 휴먼)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는 오늘날, 다른 한편에선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둘러싼 저급한 환경에 의해. [무주의 맹시-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풍경으로 남아야 할 인간의 거주지와 인권 유린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현대인의 ‘무주의’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다. 더불어 졸지에 생명을 잃은 사람들과 그들의 남은 가족들에게 보내는 애도이자 해원 행위며 붕괴된 공동체에 대한 분노이자 슬픔이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시대, 자유로운 일상과 크고 작은 공동체의 질서가 붕괴되는 경험 속에서 인권과 환경, 연대에 대한 가치가 높게 상승하고 있는 현재, 우리의 눈은 어디에 둘 것이며 무엇에 ‘주의’해야 할까?
인간존재와 실존적 장소에 대한 의미, 공동체 연대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시간이 이 전시를 통해 공유되기를 바란다.
정윤선의 작업은 꾸준히 장소(도시공간)에 집중해 왔다.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예술적 담론들 그 중첩적인 레이어를 가진 광범위한 영역, 결코 고정되지 않는 유목적 사고의 공간, 촘촘히 기록된 사건들로 만들어진 내러티브가 존재하는 장소에 작가는 끊임없이 개입해왔다. 미적 오브제를 생산해 내는 ‘생산자’이기 보다는 예술적 행위를 통해 일종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자행하며 공적 영역에서 공동체 구성원들과 관계 맺고 그들이 가진 생각과 정서를 바탕으로 지역과 사회, 사람을 향한 예술적 실천을 기획한다. 이러한 이동과 흐름 속에서 실현되는 예술가의 실천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개인의 예술적 ‘성취’보다는 ‘맥락과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더불어 그 실천이 구현되는 장소는 예술가와 공동체, 예술과 사회적 의식, 작품과 공적 공간, 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적 기능, 향유와 소통, 문화와 경제, 자유와 윤리문제 등이 교차하는 다채로운 장이 된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시간이 축적된 도시의 ‘장소’에서 이 공간의 주체인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며 그 역사를 이어 나가야 하는지 그 철학적 사유의 시간을 공적 영역에서 공론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녀는 1976년 부산에서 출생, 부산동아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와 동대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순수예술 석사과정을 마쳤다. 스페인 La fragua, 프랑스 CAMAC, 베를린 takt, 일본 뱅크아트 NYK, 대만의 TAV, 부산 홍티아트센터 등 국내외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경험한 작가이며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제(2018)와 바다미술제(2006)에 초대작가로 참여하였고 15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2020년 서울 성균관대학교에서 예술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 그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히 작업 중이다.